세상만사 인생살이 천근만근 고민거리가 한순간 아무일도 아닌 것들이 된다. 그래서 마신다. 힘들면 더 마시고 마신다. 당장의 위로. 자고 일어나면 사라져버릴 용기와 다짐들. 허무한 아침. 벗어나고 싶다. 다시 시작할래. 가슴벅찬 아침. 설레이는 출발
무기력한 대화. 슬픈 위로. 불편한 침묵.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은 무엇이 되어져야 했는가에 대한 고민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물론 그것이 지난 시간에 대한 단편적인 후회가 되어서는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는다.
마주하는 사람도 나와 같이 한 번뿐인 인생을 살고 있다.
글을 쓰자. 쓰기 위해 생각을 하자. 생각을 하고 실천을 하자.
조금씩 자주 쓰자. 꾸준히 쓰자.
장선우, 박광수 등 이른바 사회파로 분류되는 일군의 감독들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하며 김규항은 이런 말을 했다. "한국영화의 비극은 바로 켄 로치가 없다는데 있다." 80년대를 보낸 많은 이들이 영화판에 뛰어들었고, 어디 못지 않게 자본의 모순이 극명한 이 땅에 자본주의와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는 감독이 나오지 않은다는데 그는 깊이 한탄한다.
사실 그런 현실이 한국영화의 비극씩이나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산업논리가 득세하는 이 곳에서 B급좌파의 불만은 허망한 푸념일지 모른다. 그러나 열악한 여건에서도 어디선가 힘겹게 분전하고 있을 우리의 켄 로치들에게 박수를.
근래 본 켄 로치의 영화에 작은 감상 하나 남기려던 것이, 대책없이 서두만 길어졌다 ㅡㅡ;
사랑하는 남녀와 그들을 가로막는 장애 그리고 갈등, 이별과 재회. 영화는 여느 멜로와 다를 바 없이 전개된다. 다만 특별한게 있다면 연인이 마주하는 장애가 불치병이나 출생의 비밀 따위가 아닌 종교와 인종,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된다는 점이다. 이 해묵은 인간 집단간의 갈등이 위력을 발휘하는건 비단 전쟁과 테러만이 아니다. 일상 속에 침투한 차별과 배제의 쟁투가 개인의 삶과 사적 관계 속에서 지겹도록 반복된다.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인물은 주인공 카림의 아버지이다. 파키스탄 출신 이민 1세대인 그는 자기 세대의 가치로 자식들의 삶을 구속하고 억압하는 지극히 완고한 인물이다. 그럼에도 단순히 그에게 분노하고, 극복해야할 대상으로만 치부하기에 그가 체현하는 역사적 상처가 너무 깊다. 타고난 인종과 종교적 차별로 인해 온갖 박해와 멸시 속에서 살아야 했고, 쌍둥이로 태어난 동생까지 잃었던 그에게 아들의 행동은 어떻게 다가왔을까. 미워할래야 도저히 미워할 수 없고, 이해하기 싫어도 결국엔 이해하게 되는 그들. 그들이 항상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