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낮은 곳을 향한 광대의 경제학
'노동가치이론 연구'의 저자, 개성있는 외모의 시사토론프로그램 진행자, 해박한 지식과 탁월한 문장력을 지닌 칼럼니스트. 정운영.
지난 가을, 책장 한 구석에 잠자고 있던 그의 책 '중국경제산책'을 무심결에 꺼내든 다음날 그의 부음을 접했다. 몸서리 쳐질 정도로 기묘한 일이었지만, 우연은 우연에 불과했고 당시 읽었던 그 책 역시 별다른 여운을 남기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나에게 그는 앞서 떠올린 단편적인 이미지들에 불과했다.
해가 지나고, 그의 책 두 권을 더 읽었다. 각종 매체에 그가 기고했던 시론과 연재물들을 엮은 책 '광대의 경제학(까치, 1989)'과 '저 낮은 경제학을 위하여(까치, 1990)'가 바로 그것이다. 제목이 그대로 말해주듯 그가 지향하는 경제학의 좌표는 고관대작 어르신들이 노니는 '저 높은 곳'의 고상함과 체감할 수 없는 그들만의 풍요에 있지 않다. 우리 사회의 대다수가 위치한 삶의 현장, 생산의 발원지이자 소비의 귀결점이 되어야할 그 곳을 소외시키는 경제담론에 대한 '광대스러운' 항변과 조롱이 두 책에 엮인 글들이 공유하는 핵심이다.
그는 경제학과 경제를 '밥과 사람의 관계로부터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해명하는 학문'이자 '풍족한 밥에 대한 요구요, 자유의 영역을 확대해나가는 과정'으로 정의한다. 경제학하면 반사적으로 천박한 숫자놀음와 조잡한 그래프부터 떠올리고, 경제하면 무작정 성장이니 개발부터 들먹이기를 강요하는 우리의 현실에서 경제학과 경제에 대한 그의 정의는 그 자체로 유효하다.
현재와 십수년의 시차를 두고 출간된 이 책들 속에 그려지는 사회 경제적 현실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미 FTA, 사회 양극화, 전경련의 중등 교과서 제작 등등의 문제들이 어디 어제오늘의 문제였는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지금껏 낮은 곳으로 선회한 적이 없으므로.
덧> 참고하시면 좋을듯. 한신대 윤소영 교수가 쓴 추모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