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머무는자리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voskresni 2005. 3. 29. 16:28

사람을 불편하고 불쾌하게 만드는 영화가 있다. 말초적인 역겨움, 아까운 시간, 털린 지갑에 대한 분노 이유야 여러가지일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영화를 보는 '재미'가 반감되는 것은 아니다.

클로저가 그런 영화가 아닐까. 시종일관 여유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다 영화가 얄굽게 던지는 한마디. '그거 봐. 너네 사랑하는 거 아니잖아' 그러나 불쾌함은 묘한 통쾌함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Hello, Stranger?"
안녕, 낯선 아저씨?

클로저(closer)라는 제목의 영화가 전하는 첫 대사이다. 제목과 대비되는 Stranger라는 한마디가 사뭇 의미심장하다. 교통사고, 사기 당한 번개미팅 일상적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무리있을 낯선 만남, 우연한 계기에서 마법과도 같은 사랑에 빠지는 영화속 남녀들은 서로 가까워지는 만큼 불신하고 질투하며 멀어져간다. 가까운 당신은 너무 먼 당신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I love you"
나는 너를 사랑해

클로저는 '사랑을 이야기 하는 영화'다. 여느 사랑영화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주인공들은 지겹도록 사랑하고, 사랑을 고백하고, 사랑을 갈구한다. 그러나 그들이 그리는 사랑은 결코 아름답지 못하다. 그들이 말하는 사랑은 욕정의 다른 이름이거나 거짓말, 확신할 수 없는 두리뭉실한 감정의 일조각일 뿐이다.
'너네 정말 사랑하는거 맞아? 이런 걸 사랑이라고 하는거니? 그런데 그게 있기는 한거니?'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한 지극한 회의, 사랑한다는 말에 대한 야멸찬 냉소 속에서 파생되는 불쾌함은 추한 내면을 들켜버린 불안과 심연의 확신할 수 없는 의구심으로 이어진다. 이런 감정은 비단 영화를 보러 '극장'('영화'를 보러 극장에 가는 것과 대비되는)을 찾은 연인들만의 것은 아니리라.

"yes... no..."
그래. 아니야. 잘 모르겠어.

그들은 재차 묻고 또 묻는다. '나 사랑해?' 사전이라는 친구 가라사대, 사랑은 아끼고 위하여 한없이 베푸는 마음일지인데 당신의 마음따위 뭐 그리도 중요할까. 손해보기 싫다는 마음. 이어지는 질문  '너 걔랑 잤니?' 이제 사랑은 유치함이라는 이름의 불신으로 진화한다.
상대방의 진실 혹은 진심을 원하지만 이제 아무것도 가질 수가 없다. 공기를 속에 부유하는 당신의 말은 구차한 변명에 불과하거나 거짓일 뿐이다. 그것이 설령 진심일지라도. 왜냐고? 사랑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