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상의 전환 그리고 비경쟁이라는 이름의 경쟁
재테크 블루오션을 찾아라 (머니투데이, 2005.10.04)
대학개혁의 블루오션 전략 (경향신문, 2005.07.17)
CEO들 "블루오션 책 필독" (파이낸셜뉴스, 2005.07.20)
광복 100년을 향한 한국의 '블루오션' (동아일보, 2005.08.18)
정치도 싸움 없는 블루오션 전략 선택해야 (중앙일보, 2005.09.22)
문화콘텐츠 분야도 블루오션 전략 필요 (전자신문, 2005.09.01)
"모든 분야에 블루오션 있다" (문화일보, 2005.08.25)
정치/경제/사회/문화 분야를 가릴 것 없이 수많은 조직과 인사들이 열광하며, 경쟁적으로 블루오션을 주창하고 나섰다. 동네 야채가게 주인부터 국정을 지휘/총괄하는 각 부처의 장관, 대통령에게까지 블루오션은 지속적인 경기침체와 첨예화되는 경쟁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효과적 무기이자 거스를 수 없는 "경쟁적 요소"가 되어 버렸다.(심지어 여당의 당의장은 "우리의 대통령은 대표적인 블루오션 케이스"임을 주장하고 나섰다.) 브랜드 차별화, 경쟁자 벤치마킹, 전략적 포지셔닝(기존의 경쟁력 비교우위 전략) 등이 활보하던 경영 전략 담론에서 블루오션이라는 개념 자체가 엄청난 파급력을 지닌 "블루오션"을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레드오션(Red Ocean)/블루오션(Blue Ocean)
레드오션은 오늘날 존재하는 모든 산업을 지칭하며 이미 잘 알려진 시장 공간이다. 레드오션에서는 산업간 경계와 게임의 법칙이 분명하다. 기업들은 기존 수요에서 보다 큰 점유율을 얻기 위해 경쟁자를 능가하려 애쓰지만, 시장 참가자 수가 늘어남에 따라 수익과 성장에 대한 기대치는 낮아진다. 생존을 건 치열한 경쟁은 시장을 유혈의 붉은 바다로 이끈다.
한편, 블루오션은 미개척 시장 공간으로 가능성의 형태로 존재하는 시장 공간이다. 블루오션은 기존 산업의 내/외부, 그 경계선 모두에 잠재되어 있다. 게임의 규칙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경쟁과는 무관하다. 블루오션에서 시장 수요는 경쟁이 아닌 창조에 의해서 얻어지며, 이곳에는 높은 수익과 무한한 성장을 가능케 하는 엄청난 기회가 존재한다.
개념상의 정의가 대조적으로 설명해주듯, 『블루오션전략』이 말하는 핵심은 명확하다. 치열한 경쟁에 의해 성장의 한계에 봉착한 레드오션에 대한 과도한 의존과 집착을 버리고, 비경쟁의 새로운 시장 공간인 블루오션의 창출을 통해 획기적인 성장을 이루자는 것이다.
용어상의 생경함에도 불구하고 블루오션은 그다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수익과 성장의 신천지인 비경쟁 신산업과 그 곳으로 향하려는 우리의 노력은 언제나 존재해왔다. 역사적 사례를 통해 새로운 산업을 창출하고 기존 산업을 재창출해내려는 우리의 노력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저자들은 과거를 돌아보라고 요구한다. 자동차, 항공, 석유화학, 휴대폰, 경영 컨설팅, 특급 택배 서비스, 뮤추얼 펀드 등 오늘날 너무도 당연한 수많은 산업영역들을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시절은 그다지 멀지 않다. 또한 얼마 멀지 않은 시간이 지난 후 "오늘날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산업분야"는 버젓이 시장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블루오션 항해를 위한 도구들, 가치혁신 그리고 발상의 전환
많은 이들이 오해하는 것처럼 이 책의 강점은 새로운 시장 공간의 제시, 즉 블루오션이라는 표상 자체에 있지 않다. 이미 존재해 온 대상을 선문답 같은 개념(실제로 국립국어원의 원장은 "블루오션"의 우리말 대체어로 보다 명확한 의미를 담보할 수 있는 "대안시장"을 선정했다.)으로 포장하는 것에 그쳤다면 『블루오션전략』은 기획력으로 승부하는 그저 잘 팔리는(책 책표지 하단에 위치한 "월스트리트 베스트셀러!", "출간 후 1개월만에 전미 베스트셀러!" 등의 문구들을 보라.)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러나 책 전반을 통해 소개되는 방대한 사례와 조사내용, 역사적 시간과 산업간 경계를 아우르는 세심한 분석은 물론이거니와 블루오션을 항해하는 다양하고도 유용한 무기들(전략적 도구들과 전략 수립과 실행의 원칙, 그 초석이 되는 가치혁신)은 그 이름값만큼이나 탁월하다.
저자들은 전략에 대한 기본적 접근방식부터 달리 하라고 요구한다. 기존 경쟁 기반 시장이 강요해 온 도그마인 가치와 비용의 상쇄관계로부터 벗어나라는 것이다. 제품이나 서비스의 차별화와 비용우위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던 기존의 전략적 관행을 불필요한 경쟁적 요소의 제거와 감소를 통한 "비용 절약"과 고객이 체감하는 가치의 증가와 창조를 통한 "가치의 비약적 증대"로 전환하는 것이야말로 블루오션으로 향하는 그 초석(저자들은 이를 "가치혁신"이라 명하며 기존의 기술혁신이나 시장 선구자(maket pioneering)과 구별한다.)이라는 것이다. 이를 통해 그간의 많은 기업들이 계속적인 혁신 프로그램과 전략에도 불구하고 창의적인 결과물(블루오션이라는 신천지를 포함한)을 내놓지 못한 핵심적인 이유 중 하나가 이 "가치/비용의 상쇄관계"라는 전제에 매몰되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되돌아볼 수 있다. 이어서 제시되는 가치혁신의 기초가 되는 전략적 도구들과 블루오션 전략 수립과 실행의 구체적인 방법론이 되는 여섯 가시 원칙(시장의 경계선을 재구축하라/수치가 아닌 큰 그림에 포커스하라/비고객을 찾아라/정확한 시퀀스를 만들어라/조직의 주요 장애를 극복하라/전략 실행을 전략화하라)의 유용성과 치밀함 역시 흥미롭다.
다른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문제를 설정하고 원칙과 방법을 정립함에 있어 그 근간이 되는 전제를 새롭게 해석하고 규정하는 책 전반에 깔린 사고방식이었다. 앞에서 서술한 가치혁신과 더불어 그 대표적인 예를 뽑는다면 "시장의 경계선을 재구축하라"는 전략 수립의 첫 번째 원칙일 것이다. 경계선, 재구축이라는 단어가 상징하듯 우리의 창의적인 저자들은 기존의 전제와 룰이라는 "경계선"에 계속적인 물음을 던지며 문제 그 자체를 "재구축" 하라고 종용한다. 다양하고도 흥미로운 사례를 제시하고, 원칙적인 명제를 나열하는 경제/경영 서적은 도처에 널려있다. 그러나 사물과 대상을 대하는 새로운 방식, 즉 "발상의 전환"을 돕는 책은 흔치 않다.
"블루오션"이라는 이름의 경쟁, 남겨진 과제
아담 스미스 이래로 경제학(속칭 주류라고 하는)은 자본주의의 역사와 그 궤를 같이 했다. 그 속에서 희소성과 선택, 경쟁의 원리는 그 근간을 이루는 핵심적인 주제이자 무기였다. 수많은 경제 주체의 "이기적 경쟁"이 만들어내는 '보이지 않는 손'의 힘은 막강했고, 그것은 자본주의 경제와 이론을 떠받치는 힘이었다. 공산주의라는 거세한 도전 역시 그 앞에서는 맥을 못 추는 듯(!) 했다. 그런데 웬일인가. 체제경쟁의 막바지가 보이는 오늘, 경쟁의 피바다로부터 벗어나자는 경영서적 한권이 세상을 판치고 있다.
다소 희극적으로 상정해 본 상황이다. 그러나 그것은 산업영역에서 "경쟁"이라는 관계를 바라보는 『블루오션전략』의 기본적인 관점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당연하게도 '경쟁의 피바다'를 벗어나자는 이 책의 슬로건은 이윤 창출이라는 자본주의적 경쟁 속에서 보다 통쾌하고 효율적인 승리를 얻자는 것이지, 결코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경쟁원리에 대한 부정은 아니다. 이 점은 우리에게 몇 가지 경제학적 과제를 시사한다.
첫째, 저자들 역시 지적한 문제이지만, 블루오션은 언제나 있어 왔듯이 영원할 수 없다는 것. 아무리 비경쟁 시장을 창출하고 그것을 선점한다고 해도 한 산업의 초과 이윤은 타산업의 자본을 자석처럼 끌어당긴다. 물밀듯이 시장으로 진입해 들어오는 후발업체들의 난립과 혼재로 블루오션은 곧 레드오션으로 변해갈 것이다. 역사적으로 창출된 수많은 블루오션들이 현재의 혹은 가까운 미래의 레드오션에 다름 아님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쿨"한 저자들은 말한다. "선점하라. 그리고 미련없이 떠나라"
둘째, 개별 기업 차원을 넘어 거시 경제적 측면 볼 때, 블루오션의 지속은 결코 공공선을 이룩하는 길이 될 수 없다. 단기적으로 비용절감을 통한 상대적 저가격과 구매자의 가치 증대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일 수 있지만, 이것이 인위적인 진입장벽으로 인해 독점으로 장기간 이어질 때, 적정 이윤에 대한 기업의 자제력을 담보할 수 없는 한 독점가격 형성으로 인한 분배의 왜곡과 품질 저하는 어찌 보면 자명하기까지 하다. 한편, 독점이 아니라 하더라도 블루오션 초기 기업들에 의해 창출된 이득은 난립하는 후발업체들로 파생되는 사회적 손실로 상쇄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셋째, 거대 자본에게 블루오션의 가능성은 보다 크게 열려 있다는 점이다. 참신한 아이디어 자체로 승부가 가능한 일부 산업을 제외한 경우 엄청난 초기 투자비용을 요하는 신산업(최근 주목받고 있는 DMB, WIBRO 등의 통신 산업이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등에서 기존에 축적된 막대한 자본과 유동성, 계열사 간의 연계성을 동원할 수 있는 대기업들은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과연 누구의 블루오션인가.
물론 『블루오션전략』은 개별 기업을 위한 전략 지침서이며, 상기의 문제들은 저자들의 관심을 벗어난 이야기이다. 현 시기 사회적 화두로서 논의되는 "블루오션"은 새로운 성장 동력의 발굴, 기업과 고객의 동반 가치 증대, 경영 전략 수립의 새로운 차원이라는 희망적인 가능성들을 열어 놓았다. 그러나 블루오션 그 자체가 그다지 새로운 것은 아니라는 것, 비경쟁을 표방하는 다른 이름의 레드오션 속에 존재하는 것임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p.s. 제시기에 제출한 거의 유일한 과제인거 같다ㅡㅡ. 실은 반도 채 읽지 못하고 "짜집기, 추측하기, 과장하기, 뻥치기"라는 작성법에 의거해서. 처음 접해본 경영서적, 돈주고 샀으니 어찌할 수 없다지만 당체 못 읽어 먹겠다.